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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4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by 닮은샬걀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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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정제 연구에 최초로 적용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입니다. 자본론에서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상품입니다.

 

상품은 인간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말합니다. 쓸모가 있는지를 따지는 사용가치, 교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교환가치. 둘 다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죠.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해 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정의했습니다.

 

즉, 6시간 동안 6켤레의 신발을 만든다면 신발의 가치는 1 노동시간이라는 것이죠.

 

또 화폐를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화폐의 물신성이 생겨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도의 노동 가치론을 이어 받아서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전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했죠. 그러나 그가 자본론을 쓴 주요 목적은 바로 '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항상 가난할까? 반대로 놀고먹는 자본가들은 왜 점점 더 부자가 될까?'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해답을 이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냄으로써 찾을 수 있었죠.

 

여기는 빵 공장입니다. 이제 빵 1개를 만드는데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이 드는지 계산해보겠습니다. 먼저 밀가루 1kg을 1 노동시간이라 하겠습니다.

 

기계는 빵 10,000개를 만들면 수명이 다 합니다. 그럼 1개를 만드는 데에는 1 노동시간이 들죠.

 

그리고 노동력도 1 노동시간이 든다고 치면, 빵 1개를 만드는 데는 모두 3 노동시간이 듭니다.

 

만약 1 노동시간을 화폐로 환산해서 1,000원이라고 하면은 빵 1개는 3,000원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하루에 평균 8시간을 일하면 모두 24 노동시간이 나오고, 그동안 만든 빵 8개의 가치는 24,000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기계나 원료는 그 가치가 그대로 인정됐는데 노동자는 8시간을 일하는데도 자본가는 일당으로 3,000원밖에 안 줍니다.

 

그럼 나머지 5 노동시간, 즉 5,000원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자본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남은 가치를 잉여가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노동자는 싫다고 못 할까요? 자본가가 그만둬라 하면 그만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에게 더 오래 일하게 합니다. 물론 일당은 절대 더 주지 않죠. 결국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자본가는 더 많은 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만들어진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자본가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하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

 

노동자가 직접 손으로 빵을 만들 때 필요 노동시간은 3시간. 하지만 기계를 들여와 빵을 만들면 같은 개수의 빵을 만드는데 1시간이면 되죠. 이는 결국 필요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잉여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 노동자의 임금은 날로 싸지고 자본가는 그만큼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생겨난 이윤을 특별 잉여가치, 또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했습니다.

 

마르크는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하는 자본가의 이기심 때문에 기계가 계속 노동을 대신하면 실업자가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일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임금은 더 낮아지고 이렇게 되면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으니 기업도 자본도 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인 부황이 시작되고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경고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서 꿈꾸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펼쳤던 이상적인 사회는 결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사상의 시작점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수식이 난무하는 현대의 경제학과는 사고의 시작부터가 다르지 않습니까.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를 오해했습니다. 공산주의도 칼 마르크스를 오해했습니다. 그들에겐 오직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그렸던 세상은 끝없는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소수 지배의 독재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도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다고 믿었듯이 위기의 순간, 이제 우리 안에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세상을 구해주길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 학교에서 배울 땐 재미없게 느껴졌는데 경제 공부를 할 때 다시 보니 뭔가 새롭다. 특히 마르크스의 자본론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 사회와 모습도 많이 비슷하고. 과연 미래에도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이어질까? 인터넷도 없는 시절에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해서 책으로 출판까지 하지... 난 지금 써보라 해도 못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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